
미국 고유가 쇼크 (유가 폭등, 트럼프 지지율, 중간선거)
주유소 앞에 차가 줄지어 늘어선 풍경, 한국에서도 종종 봤지만 LA에서 그 장면을 뉴스로 접했을 때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갤런당 6달러. 리터로 환산하면 약 2,300원입니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해 온 '유가 안정'이라는 치적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갤런당 6달러, 미국 기름값이 무너진 이유는
솔직히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 제가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갤런당 4.18달러라는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2022년 8월 이후 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LA 시내는 이미 평균을 훨씬 웃돌아 6달러를 넘긴 주유소가 부지기수라는데, 리터당 2,300원이면 한국 평균보다도 비싼 겁니다.
이 가격 폭등의 직접적인 방아쇠는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봉쇄 위기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해로로, 전 세계 원유 수출량의 약 20%가 이 구간을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이란이 이 해협을 막겠다고 위협하거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 유가는 즉각 반응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을 "극도로 강력하게 타격하겠다"고 발언한 직후 국제 유가는 단숨에 11% 넘게 뛰었고, 개전 이후 한 달 만에 전체 상승폭은 66%에 달했습니다.
석유 업계에서는 이 폭등이 끝이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서 선취매(先取買)란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해 현재 시점에 미리 사두는 원유 매수 행위를 말합니다. 이 선취매 물량이 시장에 쌓이면, 현물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선물 가격이 이를 끌어올리는 연쇄 효과가 발생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 당장 전쟁이 멈춰도, 기름값이 곧바로 내려올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이 뉴스를 보면서 가장 무겁게 받아들인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공급망(Supply Chain) 전반에 파급 효과가 생깁니다. 공급망이란 원자재 조달부터 제품 생산, 운송, 소비자 인도까지 연결된 전체 흐름을 말하는데, 물류비 상승이 식료품·공산품 가격을 동반 인상시키는 구조입니다. 결국 주유소에서 시작된 충격이 마트 계산대까지 번지게 됩니다.
현재 미국 고유가 상황을 숫자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 갤런당 4.18달러 (2022년 8월 이후 최고치)
- LA 시내 일부 주유소: 갤런당 6달러 초과
- 개전 후 국제 유가 상승폭: 약 66% (한 달 기준)
- 대형 픽업트럭 만탱 추가 비용: 약 37달러(한화 약 6만 원) 증가
지지율 34%, 트럼프는 왜 유가를 언급하지 않는가
지지율이 34%라는 숫자,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지 않습니까? 로이터와 입소스가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재집권 이후 최저치인 34%를 기록했습니다(출처: 로이터). 특히 생활비 문제에 대한 긍정 평가는 22%까지 추락했는데, 이는 고물가로 인해 재선에 실패한 바이든 행정부의 최저 수치보다도 낮습니다.
제 경험상 경제 지표와 지지율은 반드시 같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다릅니다. 미국인들이 매일 체감하는 가장 직접적인 물가가 바로 기름값이기 때문입니다. 차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에서, 주유소를 갈 때마다 폭등한 가격을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은 어떤 정치적 수사(rhetoric)로도 덮기 어렵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해방의 날 1주년'을 맞아 미국 우선 무역 정책의 성과를 자축했습니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바이든 시절 잃었던 임금을 1년 만에 회복했다는 주장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내내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워 온 유가 안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이 침묵이 오히려 현재 상황을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당층(Independent Voters)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여기서 무당층이란 특정 정당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유권자 집단으로, 미국 선거에서 결과를 뒤집는 핵심 변수입니다. 최신 조사에서 무당층의 민주당 선호도는 34%로 공화당 20%를 크게 앞섰습니다. 11월 중간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서, 공화당으로서는 경계령이 내려질 수밖에 없는 수치입니다(출처: Reuters).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 전쟁은 어디로 가는가
국민 67%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사태 해결을 위한 명확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이 수치를 보고 든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목표가 불분명한 전쟁은, 이기고 있어도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이란이 붕괴 상태에 있다고 밝히며 호르무즈 해협을 조속히 열어달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이란 측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새로운 무기로 반격하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양측의 메시지가 완전히 엇갈리는 상황에서 국제 유가가 안정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 찰스 3세 국왕을 국빈으로 맞이하며 동맹 결속을 과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힙니다. 전쟁에 대한 국내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외교적 성과를 통해 내부 결집을 시도하는 전형적인 정치적 행보로 보입니다. 개전 이후 군사 작전 지지율은 한 달 만에 7%포인트 하락해 34%에 머물고 있으며, 강력 반대 의견은 43%로 12%포인트나 늘었습니다.
중간선거(Midterm Election)란 대통령 임기 2년이 되는 시점에 치러지는 의회 선거로, 집권 여당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띱니다. 역사적으로 집권당이 고전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경제 불만이 클수록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고물가 속에서 하원을 잃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가 처한 상황은, 그때의 바이든보다 수치상으로 더 나쁩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한 달 사이에 66% 폭등한 유가가 미국 서민들의 지갑에 남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입니다. 고유가 충격이 공급망을 타고 전방위 물가 상승으로 번지기까지는 시차가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습니다. 지금 주유소에서 느끼는 고통이 시작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몇 달간 국제 유가 흐름과 호르무즈 해협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것이, 이 사태를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