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종전 협상 (기싸움, 호르무즈, 시나리오)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이긴 쪽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는 이번 미-이란 협상 뉴스를 보면서 그 반대를 느꼈습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군경 만 명이 배치되고, 양측 대표단이 도착 여부조차 공개하지 않으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상황. 이건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게임이 아닙니다.
협상 시작 전부터 터진 기싸움의 실체
일반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어느 정도 타협 의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상황을 지켜보면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협상장 문을 열기도 전에 벌어지는 사전 압박전이 본 협상 못지않게 치열했습니다.
미국 측에서는 JB 밴스 부통령이 파키스탄으로 출발하기 전 이란에 경고 메시지를 먼저 날렸습니다. 이란 측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레바논 휴전과 동결 자산 해제가 선행되지 않으면 협상 자체가 없다고 맞받았습니다. 여기서 동결 자산이란 국제 제재로 인해 해외 금융기관에 묶여 있는 이란의 외화 자산을 뜻합니다. 이란 입장에서는 협상 테이블 자체가 이미 양보인 셈이기 때문에, 최소한 이 정도는 먼저 풀어줘야 나올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재정비"라는 문구를 대문자로 올리며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이란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전보다 더 강하게 공격하겠다는 발언도 나왔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협상 직전에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꺼내드는 건, 협상 상대를 극도로 자극할 수 있는 방식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협상단 구성으로 읽는 진짜 의도
이번 협상의 협상단 구성을 보면 양측 모두 꽤 진지하게 임한다는 신호가 읽힙니다. 미국 측에는 밴스 부통령, 위트코프 중동 특사, 쿠슈너가 포함됐고, 이란 측에는 갈리바프 의회 의장과 아라 그렇지 외무장관이 나섰습니다. 각국의 이인자급 인물들이 직접 움직인 겁니다.
제 경험상 협상에서 대표단의 급이 높을수록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패했을 때의 정치적 타격도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협상단 구성은 긍정적인 신호이기도 하고, 동시에 부담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란 측이 위트코프와 쿠슈너를 대표로 매우 꺼려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협상단에 포함돼 있긴 하지만 대표가 밴스 부통령이라는 점에서 이란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도 갈리바프 의장을 강경파이긴 하지만 협상이 가능한 상대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양측 모두 "최악은 피했다"는 판단 하에 자리에 앉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출처: KBS 국제뉴스).
호르무즈 해협, 왜 이번 협상의 핵심 변수인가
일반적으로 미-이란 협상의 핵심은 핵 프로그램과 경제 제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상황을 분석하면서 느낀 건, 이번 협상은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는 겁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변수가 새로 추가됐기 때문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란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를 잇는 전략 해협으로,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국제 해상 교통로입니다. 이란은 이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쥐고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2,000척이 넘는 선박이 이 해협 안에 발이 묶여 있고, 휴전 이후에도 하루 통과 선박 수를 최대 15척으로 제한하겠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전쟁 이전에는 하루 평균 135척이 통과했으니, 10분의 1 수준으로 틀어막은 겁니다.
이란이 이 카드를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레버리지란 협상에서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력을 의미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합의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란인들이 국제 수로를 단기적으로 갈취하고 있다"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난하는 건 오히려 그 이슈가 협상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추가 폭격이 겹치며 협상 분위기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공격 자제를 공개적으로 요청했음에도 바로 다음 날 2차 공습이 이어졌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는 이에 강력히 경고하며 협상 선행 조건으로 레바논 문제 해결을 재차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IRGC란 이란 최고지도자 직속의 정예 군사·정치 조직으로, 이란 외교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출처: BBC 코리아).
스몰딜에서 슈퍼딜까지, 현실적인 협상 시나리오
이번 협상의 결과를 전망할 때 단순하게 "타결 vs 결렬"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협상의 폭과 깊이에 따라 결과의 수준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몰딜: 호르무즈 해협을 부분 개방하고 그 수익을 단기 재건 비용으로 활용하는 수준의 제한적 합의
- 미들딜: 트럼프 임기 내 핵 동결(핵 프로그램을 현재 상태에서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일부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방식
- 빅딜: 고농축 우라늄(HEU, Highly Enriched Uranium) 반납을 조건으로 제재를 전면 해제하는 포괄적 합의. HEU란 우라늄 농축도가 20% 이상인 핵물질로, 핵무기 제조에 직접 활용될 수 있어 국제사회가 가장 예민하게 보는 항목입니다.
- 슈퍼딜: 우라늄 반출, 호르무즈 국제 관리 반납, 제재 완전 해제, 외교 관계 정상화, 안전 보장까지 포함하는 완전한 포괄 합의
제 경험상 이런 다층적 협상에서 한 번에 최상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과거 JCPOA(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 즉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이란 핵 합의도 수년간의 협상 끝에 도출됐고, 트럼프 1기 때 탈퇴하면서 무너졌습니다. 이번에는 미들딜 수준에서 먼저 합의하고, 호르무즈 해협은 단기적으로 미국과 공동 관리하는 절충안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양측이 15개 항목과 10개 항목을 각각 들고 테이블에 앉은 만큼, 처음부터 모든 항목에서 합의를 이루기보다 몇 가지 핵심 쟁점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일 겁니다. 이번 협상이 단판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이미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약 24시간 안에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단기 협상임을 시사한 데서 읽힙니다.
결국 이번 이슬라마바드 협상은 최종 합의가 아닌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이란 양측 모두 완전한 결렬보다는 부분 합의를 선택할 유인이 있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재임 중 중동 분쟁 종결이라는 정치적 성과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레바논 간 다음 주 워싱턴 협상까지 연동된 상황에서, 이번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중동 전체 안보 질서의 재편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번 협상이 새로운 판을 짜는 첫 수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