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만 명. 도쿄 아리아케 공원에 그만큼의 사람이 모인 건 이 집회가 열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4년 전 같은 자리에 1만 5천 명이 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세 배가 넘는 숫자니까요. 일본 사람들이 이 정도로 거리에 나올 만큼 뭔가 달라졌다는 뜻인데, 그게 무엇인지 한번 짚어봤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읽은 일본의 달라진 민심
5월 3일은 일본의 헌법기념일입니다. 현행 일본국헌법이 시행된 날을 기념하는 날로, 특히 헌법 9조로 불리는 평화조항, 즉 전쟁 포기와 전력 비보유를 명시한 조항을 되새기는 의미가 있습니다. 매년 이날 도쿄에서는 헌법을 지키자는 취지의 집회가 열리는데, 올해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제가 현장 취재 영상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니, 구호를 외치는 배경 음악이 카라의 '미스터'였습니다. K팝 리듬에 맞춰 수만 명이 "한 사이 다카이치"라고 외치는 장면은 솔직히 처음 봤습니다. 일본 집회에서 이런 광경은 꽤 이례적입니다. 보통 일본의 시위 현장은 중장년층, 특히 학생운동을 경험한 세대가 주축이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응원봉을 들고 나온 젊은 참가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은 2024년 12월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탄핵 촛불 집회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K팝에 맞춰 구호를 외치고 응원봉을 흔드는 방식이 집회 문화를 바꿨는데, 그 방식이 일본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일본인 중년 남성은 한국에서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했고, 누빔 공예를 하는 참가자는 일본 헌법 9조를 한국어로 번역한 엽서를 직접 만들어 나눠줬다고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 이건 분명히 달라진 흐름입니다.
같은 날 열린 개헌 찬성 집회는 약 800명 규모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비교 자체가 안 되지만, 여기에 다카이치 총리가 직접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개헌을 이뤄내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전 정권과는 결이 다른 강도였습니다. 현행 일본국헌법은 1947년 시행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된 적이 없습니다(출처: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그 헌법이 78년 만에 처음으로 실질적인 개정 시간표 앞에 놓인 겁니다.
개헌 쟁점과 투자자가 봐야 할 리스크
자민당이 추진 중인 헌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 헌법 9조 개정(자위대 명기)
- 긴급사태 조항 신설
- 참의원 선거구 압구 해소
- 교육 환경 충실화
이 중에서 외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항목은 첫 번째와 두 번째입니다.
먼저 자위대 명기 문제부터 보겠습니다. 자민당은 평화조항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그 뒤에 자위대를 명시하는 조항을 추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자민당이 2018년 마련한 초안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전쟁과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기존 조항 뒤에 "앞 항은 필요한 자위 조치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붙이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바로 헌법학자들이 말하는 저촉 조항(抵触条項) 문제입니다. 저촉 조항이란 상위 규범의 효력을 하위 규정이 사실상 무력화하는 법 구조를 말합니다. 겉으로는 평화조항을 유지하는 척하면서 내용상 핵심을 빼버리는 방식인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의 법 개정은 나중에 실제 운용 단계에서 해석을 둘러싼 갈등이 훨씬 더 커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두 번째로 긴급사태 조항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인 내용은 대규모 자연재해나 외부 무력 공격 등으로 선거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 됐을 때 국회의원 임기를 연장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비상 입법 장치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세트로 묶일 가능성이 있는 긴급정령(緊急政令) 조항입니다. 긴급정령이란 긴급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내각의 결정이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갖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국회의 동의 없이 행정부가 사실상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야당이 권한 남용을 강하게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헌을 위해서는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재적 의원 2/3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에서 과반 득표가 동시에 필요합니다(출처: 일본 총무성). 자민당은 현재 참의원 의석이 부족한 상황이라 개헌에 우호적인 야당 의원을 상대로 초당적 협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이 상황은 단기와 중장기를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될수록 외환시장에서 엔화 약세 압력이 커지고, 국채 발행 증가에 따른 금리 상승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환율·금리 리스크, 즉 보유 자산의 가치가 통화 가치 변동이나 이자율 변화로 인해 줄어드는 위험은 일본 자산을 편입한 포트폴리오에서 지금 특히 관리가 필요한 요소입니다. 반면 일본 정부가 반도체, AI, 방위산업 분야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해당 섹터의 중장기 성장성은 열려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런 구조적 변화가 있을 때 단기 변동성에 너무 반응하기보다는, 정책 방향이 고정되는 시점을 확인하고 포지션을 조정하는 방식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분석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또는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개헌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가 내년 9월에 끝나는 만큼, 그전에 개헌안 발의를 성사시키는 것이 총리 본인의 정치적 이해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특히 자위대 명기 조항과 긴급정령이 최종 안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앞으로 수개월 안에 윤곽을 드러낼 것입니다. 일본 정치 상황이 곧 시장과 외교 모두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헌법기념일 집회의 온도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