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봉쇄 (페르시아만, 유가, 에너지 위기)
하루 원유 물동량 86% 감소. 공습 소식 듣자마자 주유소로 달려간 저로서는 이 숫자가 통계가 아니라 현실로 느껴졌습니다. 중동에서 포탄이 오가는데 왜 한국이 제일 먼저 조여드는 느낌이 드는지, 그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이름 석 자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페르시아만에 석유가 몰린 이유, 진짜 따져보면
혹시 이런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태어난 건 억울한데, 대체 왜 하필 그 동네에만 석유가 그렇게 쏠려 있을까 하고요.
근본적인 답은 지금으로부터 약 2억 년 전, 공룡이 살던 중생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지구의 대륙은 하나로 뭉친 초대륙 판게아를 이루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 테티스해라는 초거대 내해가 존재했습니다. 테티스해란 판게아를 감싸던 거대한 바다 중에서도 대륙으로 둘러싸인 얕고 폐쇄적인 내해를 말합니다. 수심이 얕고 물 순환이 잘 안 되다 보니 표층에 플랑크톤과 해조류가 폭발적으로 번식했고, 이것들이 죽어서 쌓이는 속도가 박테리아가 분해하는 속도를 앞질렀습니다.
결국 해저가 무산소 환경이 되면서 유기물이 썩지 않은 채 퇴적됐고, 이게 수천만 년간 열과 압력을 받아 근원암(Source Rock)을 형성했습니다. 근원암이란 유기물이 석유로 변환되는 지층을 뜻하는데, 이 위를 증발암층이 덮으면서 석유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배사 구조(Anticline Structure)가 완성됩니다. 배사 구조란 지층이 활처럼 위로 휘어 석유와 가스가 갇히는 지질 구조를 말합니다. 페르시아만 일대가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48%를 품고 있는 건 운이 아니라 이 2 억년짜리 지질학적 설계 덕분입니다.
영국이 씨를 뿌리고, 산유국들이 거둬들인 역사
페르시아만 석유 개발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공정한 판이 아니었습니다. 1908년 영국 사업가 윌리엄 녹스 다시가 이란 후제스탄에서 석유를 처음 발견했을 때, 계약 구조는 지금 기준으로는 황당할 정도였습니다. 채굴권을 가진 외국 기업이 원유를 자유롭게 뽑아가고, 해당 국가는 배럴당 고정 수수료만 받는 구조였으니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앵글로-페르시안 오일 컴퍼니로, 오늘날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입니다.
2차 대전 이후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대 베네수엘라가 미국과 석유 판매 이익을 50 대 50으로 재분배하는 협상에 성공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즉각 같은 조건을 요구해 관철시켰습니다. 문제는 이란이었습니다. 영국은 이란의 50 대 50 요구를 거부했고, 장부 공개조차 하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결국 1951년 모사데크 총리가 석유 시설 전면 국유화를 단행했고, 영국은 미국과 함께 1953년 에이잭스 작전(Operation AJAX)이라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뒤집었습니다. 에이잭스 작전이란 CIA와 MI6가 공동으로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시킨 공작으로, 이후 이란이 반미 노선으로 기울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목격한 페르시아만의 중소 산유국들은 급격한 대결보다 점진적인 주도권 회수 전략을 택했습니다. 1960년 석유 수출국 기구인 OPEC(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이 창설된 것도 이 흐름의 결과입니다. OPEC이란 산유국들이 국제 석유 기업의 횡포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생산량과 가격에 대한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국가 간 협력 기구입니다. 1973년 4차 중동 전쟁을 계기로 아랍 산유국들이 일제히 감산과 금수 조치를 취하면서 제1차 오일 쇼크가 터졌고, 세계는 처음으로 에너지가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폭 54km인데 왜 전 세계가 떠는가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아랍에미리트·오만 사이에 위치한 수로로 최소 폭이 54km입니다. 얼핏 들으면 그렇게 좁은 것 같지 않죠. 그런데 이게 2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는 육지였을 정도로 수심이 얕습니다. 실제로 대형 유조선이 안전하게 통항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항로는 약 10km에 불과하고, 그마저 대부분 이란 쪽 영해에 몰려 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세계 최대 원유 수송 요충지입니다(출처: 에너지경제연구원). 이 수치가 동아시아에 적용되면 체감이 더 심해집니다. 한국과 일본은 원유 수입의 70% 이상, 중국도 상당 부분을 페르시아만에 의존합니다. 해협 하나가 막히면 석유 수입의 절반 이상이 그대로 멈추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봉쇄가 선언된 이후 상황을 보면 이론이 아닌 현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런던 로이즈(Lloyd's of London) 계열 해운 보험사들이 전쟁 위험 담보 취소를 통보하면서 페르시아만 내 대부분의 선박이 운항을 중단했습니다. 전쟁 위험 담보란 분쟁 지역을 항해할 때 발생하는 피해를 보상하는 특수 보험 조항인데, 이게 소멸되면 선사 입장에서는 배를 움직일 이유가 사라집니다.
3월 초 기준 페르시아만에 대기 중인 유조선만 약 200척, 하루 원유 물동량은 최대 86% 감소했습니다. 저도 공습 소식 이후 주유소를 다녀왔는데, 그때 느낀 불안감이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는 게 이 숫자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에 가장 아프게 꽂히는 건 천연가스 문제
석유도 문제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더 급하게 돌아가는 게 천연가스 쪽이라는 점이었거든요.
우리나라는 비축유를 약 200일분 보유하고 있어 석유는 단기적으로 버틸 여지가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도 자국 내 송유관을 풀가동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공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천연가스는 특성상 대량 저장이 어렵습니다. LNG(액화천연가스)란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것으로, 부피가 크게 줄어 수송은 가능하지만 상온에서는 다시 기화하기 때문에 석유처럼 대규모로 비축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한 달치 안팎의 비축량밖에 없습니다.
한국가스공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천연가스 수입의 절반 이상을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가스공사). 카타르는 송유관 우회도 불가능한 데다,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가스 생산 자체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수입선 다변화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라는 말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게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 몸으로 느꼈습니다.
이번 사태가 에너지 정책에 남긴 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천연가스 수입선의 카타르 집중도 해소 (미국·호주 등으로 분산)
- LNG 비축 설비 확대 (현행 한 담치에서 최소 두 달치 이상으로)
- 재생에너지·원자력 비중 확대를 통한 화석 연료 의존도 축소
- 사우디·UAE의 우회 송유관 가동 확대에 대한 외교적 협력 강화
이 중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항목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게 지금 이 상황의 진짜 무게입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가 에너지 위기에서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입니다. 저는 차 탈 엄두가 안 나서 대중교통으로 버티는 중입니다만, 개인의 선택보다 중요한 건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 인프라 확충 같은 구조적 전환입니다. 지금의 위기가 얼마나 빠르게 수습되느냐와 무관하게, 이 구조적 문제는 이번 봉쇄가 풀려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는 날을 기다리면서, 그다음을 어떻게 대비할지 이미 고민이 시작돼야 할 때입니다.
참고: 중동에서 싸우는데 한국이 처맞는 이유;; / 💀 호르무즈 해협의 중요성 https://www.youtube.com/watch?v=2eA1LTWi0i4